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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모자

 - 노네노네

 “.......”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될 줄 예상치 못했다. 아니, 이런 일이 벌어질거라는 생각따위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늑대 씨-”

“난 늑대가 아니라 고양이야 빨간 망토 공주님~?”

제 앞에서 능글맞게 웃고 있는 늑대..아니 고양이가 자신을 한 시간째 자신을 붙잡고 있으리라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스프와 파이가 식기 전에 얼른 할머니 댁에 가야하는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내린 신이 지금만큼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 * *

 

여름이 찾아오는 이 마당에, 할머니가 감기에 걸려버리셨다고 한다. 그것도 지독한 독감이란다. 그리고 마리네뜨는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따뜻한 감자스프와 사과파이를 전해주라는 엄마의 부탁을 받고 집을 나서는 중이였다.

“항상 조심하구 잘 다녀오렴.”

“알겠어요. 엄마.”

“스프 흘리지 않게 조심해. 넘어지지 말구!”

“네~”

 

빨간 망토를 두르고, 스프와 파이가 든 가방을 손에 맨 마리네뜨는 그녀의 엄마 사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 참 마리네뜨. 요즘 숲에서 큰 늑대 한 마리가 나온다는구나. 위험하니 늑대도 조심하면서 다녀”

“네 엄마. 다녀올게요!”

 

그래, 분명 늑대라고 했어. 그런데 이런 늑대일줄 누가 알았겠어?

“흠~!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 그 가방에서 나는 거야 공주님?”

사나운 늑대가 아니라 능글맞은 큰 검은 고양이라니. 성가시게 되었다.

 

“어차피 당신에게 줄 것이 아니니 신경 꺼요!”

“공주님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나처럼 귀여운 고양이에게”

하! 귀여운 고양이라니. 누가 사람만큼 거대한 고양이를. 그것도 귀랑 꼬리만 고양이처럼 생긴 인간을 좋다고 반응하겠냐고.

“전~혀요! 전혀 귀엽지 않으니까. 이만 비켜주세요”

 

나름 잘 처리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길을 나섰지만 이내 그가 다시 마리네뜨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런 잘생긴 고양이를 두고 어딜 가시나? 빨간 망토 공주님?”

이런.

 

마리네뜨는 숲길을 걸어간 죄밖에 없었다. 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와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숲길을 기분 좋게 걸어가고 있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성가신 늑..아니 고양이 하나가 길을 막는다.

“..또 뭔데요”

“계속 말하고 있잖아. 공주님이 나랑 오늘 하루 같이 데이트 해주면 더 이상 길을 막지 않을게.”

“당신은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 아니면 저 말고 같이 놀 사람이 없는 거예요?”

“무슨 소리야? 마을로 나가면 이 몸을 기다리는 많은 레이디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으럼 그 분들에게 물어봐요. 분명 잘 놀아 줄 테니깐.”

 

말을 마치고 가던길을 다시 가자마자 또 한 번 그가 길을 막았다.

“공주님”

또 시작이다. 계속 이렇게 간다면 할머니 댁에 도착했을 때는 미지근한 스프와 눅눅한 파이를 먹게 될 것 이였다.

“나랑 데이트 해주면 안 잡아먹지”

능글맞은 웃음을 짓던 그에게 바구니에서 사과를 꺼내 얼굴에 던졌다.

“됐다고!”

 

“할머니 저 왔어요!”

겨우겨우 도착한 작은 집의 문에 노크를 했다. 그 고양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사람만 없었으면 좀 더 일찍 올수 있었는데, 시간을 너무 지체해 버렸다. 그나저나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똑똑. 다시 한번 노크를 해봐도 반응이 없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불안감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니 집안은 매우 조용했다. 바구니를 식탁 위에 놓고 할머니를 찾으러 갔다. 부엌에도 화장실에도 거실에도 없었다. 침실에 들어가 보니 무언가 이불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할머니? 주무세요?”

“아니란다. 널 기다리고 있었어.”

포근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아닌 낮은 남성이 억지로 내는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리네뜨는 확신했다. 이불속의 생물체는 할머니가 아니라고.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는 왜 고양이 귀가 있나요?”

“그야 공주님의 예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지”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는 왜 고양이 꼬리가 있어요?”

“그야 공주님이 혹여 내가 도망할 때 잡으라고 달렸지.”

참으로 자신만만한 대답 이였다. 내가 누굴 잡아? 어림도 없지.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는 왜 손톱이 고양이처럼 날카롭고 기나요?”

그때였다. 이불속의 무언가가 정체를 드러내고 마리네뜨를 침대로 끌어 들어와 온몸으로 껴안았다. 있는 힘껏 버둥거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마리네뜨는 예상했던 얼굴이 보이자 눈썹을 찡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야 공주님이 도망갈 때 꽉 잡으라고 있는 거지. 그나저나 왜이렇게 늦게 온거야? 한참 기다렸잖아”

“음 당신이야 말로 왜 우리 할머니 집에 있는지,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어디 가셨는지 설명 좀 해줄래요?”

“할머니는 내가 잠시 동안 아는 사냥꾼 할아버지 집에 보내드렸어. 우리처럼 오붓하게 시간 보내라고 말이지”

우리처럼? 얄밉게 웃는 그가 마리네뜨 귀에 속삭였다.

 

“말했잖아 공주님. 데이트 안 해 주면 잡아먹는다고.”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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